2024.05.14 (화)

  • 맑음속초18.4℃
  • 맑음8.9℃
  • 맑음철원9.0℃
  • 맑음동두천9.6℃
  • 맑음파주8.0℃
  • 맑음대관령5.1℃
  • 맑음춘천9.1℃
  • 맑음백령도11.8℃
  • 맑음북강릉16.2℃
  • 맑음강릉19.0℃
  • 맑음동해15.0℃
  • 맑음서울13.2℃
  • 맑음인천12.9℃
  • 맑음원주10.9℃
  • 맑음울릉도13.9℃
  • 맑음수원10.1℃
  • 맑음영월8.6℃
  • 맑음충주8.3℃
  • 맑음서산9.3℃
  • 맑음울진12.3℃
  • 맑음청주13.0℃
  • 맑음대전10.6℃
  • 맑음추풍령7.4℃
  • 맑음안동9.3℃
  • 맑음상주9.6℃
  • 맑음포항13.8℃
  • 맑음군산10.9℃
  • 맑음대구11.0℃
  • 맑음전주12.1℃
  • 맑음울산9.6℃
  • 맑음창원12.3℃
  • 맑음광주12.1℃
  • 맑음부산13.5℃
  • 맑음통영12.0℃
  • 맑음목포12.4℃
  • 맑음여수14.3℃
  • 맑음흑산도12.8℃
  • 맑음완도11.4℃
  • 맑음고창8.6℃
  • 맑음순천7.3℃
  • 맑음홍성(예)10.3℃
  • 맑음8.7℃
  • 맑음제주13.9℃
  • 맑음고산14.5℃
  • 맑음성산13.2℃
  • 맑음서귀포14.2℃
  • 맑음진주8.4℃
  • 맑음강화10.2℃
  • 맑음양평10.4℃
  • 맑음이천9.5℃
  • 맑음인제7.9℃
  • 맑음홍천8.8℃
  • 맑음태백9.1℃
  • 맑음정선군6.1℃
  • 맑음제천7.3℃
  • 맑음보은7.5℃
  • 맑음천안7.9℃
  • 맑음보령10.1℃
  • 맑음부여8.5℃
  • 맑음금산7.8℃
  • 맑음9.1℃
  • 맑음부안10.3℃
  • 맑음임실7.5℃
  • 맑음정읍8.8℃
  • 맑음남원9.3℃
  • 맑음장수6.6℃
  • 맑음고창군8.5℃
  • 맑음영광군9.2℃
  • 맑음김해시11.5℃
  • 맑음순창군8.4℃
  • 맑음북창원12.2℃
  • 맑음양산시9.3℃
  • 맑음보성군10.1℃
  • 맑음강진군9.3℃
  • 맑음장흥8.2℃
  • 맑음해남9.0℃
  • 맑음고흥8.9℃
  • 맑음의령군8.3℃
  • 맑음함양군7.9℃
  • 맑음광양시12.0℃
  • 맑음진도군9.0℃
  • 맑음봉화6.7℃
  • 맑음영주8.6℃
  • 맑음문경8.3℃
  • 맑음청송군5.1℃
  • 맑음영덕11.4℃
  • 맑음의성6.9℃
  • 맑음구미10.0℃
  • 맑음영천8.1℃
  • 맑음경주시7.9℃
  • 맑음거창7.5℃
  • 맑음합천9.5℃
  • 맑음밀양10.2℃
  • 맑음산청9.0℃
  • 맑음거제10.0℃
  • 맑음남해12.0℃
  • 맑음9.3℃
군에서 형님 잃은 동생, 30년간 진실 찾았지만 ‘이젠 힘에 부친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군에서 형님 잃은 동생, 30년간 진실 찾았지만 ‘이젠 힘에 부친다’

1966년 고 이해윤 일병 의문투성이 죽음...진상규명 ‘지지부진’

20220221104729_wfwtqaqo.jpg
▲아산시 호서로에 사는 백수봉 씨는 군에서 숨진 이종사촌형 고 이해윤 일병의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30년을 헌신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논산일보]충남 아산시 호서로에 사는 백수봉 씨는 30년 넘게 군 복무 중 사망한 이종사촌형 고 이해윤 일병의 진상규명에 매달려왔다. 백 씨는 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 벅차다며 도움을 호소하고 나섰다. 
 
백 씨는 “원래 논산이 고향인데 어린 시절 형님께선 자주 우리 집을 찾았다. 형님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논산군청 지적과에 근무하다 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집안 어른들로부터 형님이 군 복무 중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입대 당시 형님은 결혼해서 자녀까지 뒀다. 군에 입대해선 가족 생계를 위해 베트남전 파병을 지원했지만, 고인의 친형이 군 부대까지 찾아가 ‘처자식이 있는 사람을 남의 나라 싸움에 보낼 수 없다’고 만류했다. 부대에선 지적과에 근무하던 고인을 사진병으로 차출해 사진 촬영업무를 맡겼는데, 그만 숨지고야 말았다”고 증언했다. 
 
육군본부 공식 기록에 따르면 고 이해윤 일병은 1964년 6월 입대해 5관구사령부 지적과에 근무하다 다음 해인 1965년 10월 통신병 보직을 받았다. 병적기록표엔 고인의 성품은 ‘온순하며 근면성실함’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다 5관구사령부 사진사병으로 차출됐고 1966년 7월 13일 숨진 채 발견됐다. 
 
백 씨가 사촌형님의 죽음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한 시점은 만 40세를 맞던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사촌 형님이 군대 가서 맞아 죽었다는 말만 들었다. 형님의 사망원인을 밝히는 일은 집안 어른들과 유가족의 몫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 어른들이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유가족도 생활고로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어 내가 이 일에 나서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백 씨는 먼저 집안 어른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고인과 함께 근무했던 분들의 증언을 듣고자 1993년 3월 10일자 <조선일보>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육군본부,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 관련 기관에 고인의 죽음의 이유를 알려달라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냈다. 
 
사망원인·시점 석연찮지만 군은 ‘요지부동’
 

0217_이해윤 기록_01.jpg
고 이해윤 일병 병적기록표 Ⓒ 자료 = 백수봉 씨 제공
 
백 씨가 고인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근본 원인은 군 당국의 석연찮은 태도 때문이었다. 
 
백 씨는 “당시 집안 어르신과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의 몸엔 온통 멍자국이었고 성기가 부어 있었다. 군 당국은 시신을 부검했지만 유가족의 입회는 차단했다. 그러면서 간디스토마에 따른 병사로 처리했다”고 털어 놓았다.
 
더 석연찮은 건 사망시점이다. 고인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시점은 1966년 7월 13일이었다. 그러나 육군본부가 1992년 유가족에게 발급한 사망확인서엔 고인의 사망시점이 7월 1일로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가 지난 2007년 유가족이 낸 국가유공자 유족등록 신청을 기각하면서 보낸 답변서엔 “사망시점 1966년 7월 13일 / 사망원인 변사”로 기록돼 있었다. 
 
백 씨는 “저간의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형님께서 복무 중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사망한 것 같다”며 의문을 던졌다. 
 
고 이해윤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군의 공식 입장은 돌연사다. 국방부조사본부는 2016년 3월 30일 백 씨에게 보낸 공문에서 다음과 같이 알렸다. 
 
-. 고 이해윤 일병은 사진병으로 근무 중 1966년 7월 13일 오전 1시 경 대구시 동구에 있는 제5관구 사령부 통신근무대 생활관에서 취침 중, 혼수상태로 발견돼 소속대 부근 민간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원인모를 돌연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 병적기록표에 의하면 소속대에서 병명미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고, 참고인에 의하면 구타를 목격하거나 구타로 인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진술 등으로 볼 때 구타에 의한 사망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0217_이해윤 기록_02.jpg
백수봉 씨가 지난 1993년 3월 10일자 ‘조선일보’에 낸 광고. Ⓒ 자료 = 백수봉 씨 제공
 
백 씨는 이 같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침 2018년 9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제정되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아래 진상규명위)가 출범했다. 
 
백 씨는 진상규명위에 진정을 냈고, 진상규명위는 2021년 1월 “이 사건은 사망원인이 명확하지 아니하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한다”며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그러나 1년이 넘은 지금까지 조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진상규명위가 지난 1월 조사기간 연장을 결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백 씨는 “조사기간 연장이 결정됐지만 조사는 미온적이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백 씨는 지난 3일 진상규명위에 재차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는 진정을 냈다. 
 
백 씨의 간절한 바람은 전문 법조인의 지원을 받아 진상규명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백 씨는 기자에게 간곡히 호소했다. 
 
“이 모든 일을 혼자하기엔 힘에 부친다. 무엇보다 관련 증거를 모으고 군 당국에 자료 공개 청구를 하고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게 하려면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럴 처지가 아니다. 평생 사촌형님의 명예회복을 가업으로 알고 매달렸는데, 내 나이와 건강상태로 볼 때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 사촌 형님의 원을 풀어 달라.”

씨에이미디어그룹.jpg

칠장주광고(칼라).jpg

KakaoTalk_20230911_141956314.jpg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