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논산일보]올해 벼수확기를 앞둔 지난 21일 충남지역 농민들이 아산시 염치읍 송곡리 일대 농지를 트랙터로 갈아엎는 일이 있었다.
올 한해 정성껏 키운 벼가 짓밟히는 광경을 지켜본 한 농민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농민들은 이어 트랙터를 앞세우고 아산시청을 향해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이태규 부시장을 만나 ▲ 시장격리 조기 발표 ▲ 자동시장격리 의무화 ▲ 쌀 수입정책 폐기 ▲ 식량위기 대비 180만톤 쌀 비축 ▲ 면세유 가격 상승분 지원 ▲ 농촌인력 지원센터 설치 등 충남농정 10대 요구안을 전달했다.
이날 아산을 비롯해 천안 등 9개 시·군에서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었다. 한창 수확의 기쁨을 만끽해야 할 농민들이 왜 이토록 분노했을까? 농민을 분노케 한 근본원인은 쌀값 폭락이다.
28일 오전 현장을 다시 찾았다. 현장은 당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트랙터 바퀴자국은 선명했고, 300평 남짓한 농지에 심은 벼 절반 이상이 짓밟힌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
아산에서 농사만 30년을 지었다는 김재길 씨는 정부의 안이한 농업정책이 이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김 씨의 말이다.
“지난해 이맘때 80kg 1포대 당 20만 원대이던 쌀값이 올해엔 20% 하락한 15만원 선이다. 2년 전인 2020년은 흉작이었으나 2021년 수확량이 예년에 비해 20% 늘어났다. 통계청도 이 같은 상황을 예견했다. 이 경우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선제적으로 수매에 나서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게 쌀값 하락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하락한 가격을 올해 수매가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적인 요인도 한몫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아산농민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정세 불안으로 국제원자재 가격, 물류비 등이 상승했고, 이 여파로 비료값은 40%, 면세유 100%, 농자재값 20~30%, 인건비 10% 등이 올랐다고 밝혔다.
정부 대책 나왔지만 농민반응 ‘싸늘’
정부도 쌀값 폭락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관할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5일 “산지 쌀값은 지난해 10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올해 9월 15일에는 지난해 동기 대비 24.9% 하락했다. 이 하락 폭은 ’77년 관련 통계를 조사한 이후 전년 동기 대비로는 가장 큰 폭의 하락세”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2005년 공공비축제 도입 이후, 수확기 시장격리 물량으로는 최대인 45만 톤의 쌀을 10월과 12월 사이 수확기에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농림부는 또 “이번 시장격리 조치를 통해 지난해 수확기 이후 큰 폭으로 하락한 쌀값이 적정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향후 쌀값과 쌀 유통시장 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수급 상황에 맞는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쌀값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이다. 농민 김재길 씨는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발표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며 “일단 정부가 도시 노동자의 40% 수준인 농민 소득을 높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농민수당 지급 등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농 아산농민회도 농민수당을 강조하고 나섰다.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에 대해 가격결정권이 없다. 이 같은 현실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해결할 수 있다. 그 초보적인 단계가 농민수당이다. 농민수당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보상으로 가족농, 중소농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영위하는 데 의미있는 기여를 할 것”이라는 게 아산농민회의 주장이다.
한편 전농 충남도연맹은 11월 전국농민대회, 12월 민중대회 등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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